한국의 노동운동과 노동사에 새로운 말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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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동사연구소 작성일15-05-14 20:32 조회2,225회 댓글0건본문
[서평] 남화숙, 『배 만들기 나라 만들기: 박정희 시대의 민주노조운동과 대한조선공사』, 후마니타스
한국의 노동운동과 노동사에 새로운 말걸기
임광순(고려대 한국사학과 박사과정)
2013년의 끄트머리에 출판된 이 책은 이미 여러 언론과 서평을 통하여 소개되었다. 연구자 뿐만 아니라 노동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까지 호응을 얻었다. 저자는 대한조선공사(현재 한진중공업, 이하 조공)의 방대한 내부자료를 꼼꼼히 검토하여 1960년대 조공 노조의 진취적이고 자주적인 모습을 복원했다. 더 나아가 조공의 사례연구에서 새로운 문제의식을 도출하여 한국 노동사의 재해석을 시도한다. 한국어판 서문에서는 "한국사회에 말을 걸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11쪽)을 간곡히 비쳤다. 간곡한 마음은 문제의식의 진전과 논증을 통해 빛을 발했다. 저자는 식민지기부터 1980년대까지, 전국단위에서 작업장 수준까지 분석의 대상과 수준을 확장하였다. 노동운동에 대한 평가기준도 노동조합 지도부, 핵심인물의 정치적 지향보다는 노동(자)운동의 양상과 행위를 중심으로 삼았다. 그 결과, 저자는 "강한 국가, 약한 노동"의 설명방식이 노동자들의 주체적 행동력을 가리고, 노동자들이 자신의 힘으로 이뤘던 성취들을 간과한다고 보았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한국 노동사와 노동운동에 말을 건넨다. 책의 주된 내용은 1960년대 조공의 노동운동을 복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손가락은 한국 노동사의 전통적 입장, 즉 1980년대 이전의 노동운동을 '경제적 조합주의'로 정리하는 경향을 가리킨다.(176쪽) 현재 문제에 대해서는 "희망버스로 대표되는 새로운 운동 양식과 운동 주체 형성을 모색하는 싸움의 한복판"(11쪽)이라고 말한다. 이 같은 시도는 자칫 탈정치화 된 연구방법론으로 읽힐 수 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이런 우려가 말끔하게 사라진다. 공부를 갓 시작한 입장에서 저자의 노작을 제대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저자의 큰 그림을 평가하려면 독자도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서평자로서 책의 내용을 검토하자면 다음과 같다.
1부에서 저자는 식민지 경험과 냉전의 유산이 노동운동에 미친 영향과 노동자들의 대응을 다룬다. 식민지기 노동운동은 조직적 측면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문화적, 제도적 유산을 남겼으며 일제의 노동통제전략은 실패했다. 해방공간에서 전개된 노동자 자주관리운동은 이를 증명한다. 한국전쟁은 이러한 급진성을 제거했지만 일부는 반공주의 노동운동(전진한 그룹)으로 계승되었다. 저자는 선행연구에 기대어 1부를 서술했지만 노동자들의 행위를 강조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하였다.
예컨대, 안태정은 전평의 산업건설 캠페인을 통일전선전략으로 평가했다. 저자는 그것을 자본주의적이면서도 국가사회주의적이라고 강조하고 1970년대 공장새마을운동과 연결시킨다. 또한 임송자가 1950년대 반공주의 노동운동을 분석하여 한국 노동운동의 보수적 기원을 규명했다면, 저자는 더 나아가 전진한 그룹의 아나코-생디칼리즘적 성격을 강조한다.
이처럼 저자는 조공 노동운동의 前史로서 운동의 급진적 선택들을 연결시킨다. 이러한 서술은 일관성이 있으나 일부 보완을 필요로 한다. 해방공간에서 자주관리운동에 나섰던 노동자들은 공산당 통제마저 벗어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노조 지도부와 조합원의 관계는 어땠을까? 저자 말대로 행위를 기준으로 운동의 급진성을 평가하려면 지도부-조합원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또한 대부분 연구자들은 1950년대 전진한 그룹의 非자본주의적 요소를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그러나 신용옥은 저자와 달리 전진한 그룹과 이승만 계열이 가까웠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만약 저자의 말대로 전진한 그룹이 아나코-생디칼리즘적 성격을 가졌다면 그들의 정치지향보다 산하 노동조합과 맺었던 관계망을 분석해야 한다.
2부에서는 1960년대 조공의 민주노조운동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주장을 전개한다. 조공 노조는 1950년대 후반 사측과 싸움에서 승리하였고, 1964년 어용 지도부로부터 노조를 탈환하였다. 노동조합의 승리는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고무시켰고, 노동조합을 민주적이고 급진적인 방향으로 이끌었다. 조공 노조는 많은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배출하였다. 내부에서 비정규직과 연대하였으며 외부에서 국가관리 기업체 노동조합협의회 이름으로 적극적인 연대투쟁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조공 노조의 "노동 정치를 민주적으로 변혁하기 위한 도전"(257쪽)은 1969년 파업의 실패와 전투적 노조 지도부의 축출 이후 침체되었다. 단일 기업노조의 힘만으로는 경영합리화와 민영화, 그리고 국가의 노사관계에 대한 광범위한 개입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조공 노조의 전투성과 급진성은 1987년 7월이 되기까지 20년에 가까운 시기동안 동면에 들어갔다.(3부)
3부에서 느낀 두가지 아쉬움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1968~69년 조공의 투쟁에 대한 평가문제이며, 둘째는 유신체제기 노동현장 분위기에 대한 이견이다. 먼저 조공의 1968~69년의 투쟁은 조공 노조의 분위기를 악화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나 1970년대 노동운동의 전개과정을 설명하는데 실마리를 제공한다. 1960년대 후반 조공 파업의 특징들, 즉 (1)타공장보다 나은 급여를 받았으나 "생계비 이하의 임금"에 대한 분노(289쪽), (2)노동현장의 민족주의가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작업중단'의 영역으로 내려오면서 모호해졌다는 설명(292쪽), (3)노동조합이 기업주를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비판하면서 도덕적 우위를 확보한 사실(316쪽)은 1970년대 민주노조 작업장, 노동운동과 유사한 모습이다. 따라서 저자의 분석방법론을 다른 작업장, 다른 산업으로 확장하여 비교한다면 1960~70년대 노동운동의 연속성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유신체제기 노동현장 분위기의 문제이다. 1970년대 "노조의 회의 기록에서는 현장으로부터 들려오던 갈등의 목소리나 활기찬 토론이 사라"졌다.(375쪽) 하지만 조공의 1960년대 투쟁경험은 어떤 식으로든 내부에서 계승되었을 것이다. 저자는 연결고리를 1977~81년에 근무한 김진숙과 조공 노동자들의 장기근속에서 찾지만 설득력이 다소 부족하다. 저자가 1970년대를 일종의 '닫힌 시기'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1970년대 이전의 노동운동을 설명했던 방식을 1970년대에도 적용한다면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조공의 노동운동이 침체기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폭발하지 않았지만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들의 일상적 불만을 더 세밀하게 접근해야 한다.
저자는 조공 노조의 공장새마을운동의 적극적 추진을 노조 지도부의 순응으로 비판한다.(379쪽) 하지만 새마을사업과 노동조합 활동을 뒤섞어 이해했던 태도는 한국노총을 비롯하여 민주노조에서도 흔한 일이었다 오히려 새마을사업과 노동조합의 경계가 모호했기 때문에 한국노총은 1977년 정부와 기업인에게 공장새마을운동의 노동조합 참여보장을 요구할 수 있었다. 민주노조는 공장새마을운동이 유포했던 이상을 현실화시키는 방식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펼쳐나갔다. 분석수준을 노동조합 말단까지 구체화한다면 이런 양상은 더 잘 드러난다. 조공처럼 대규모 사업장이었던 한국전력에서 공장새마을분임토의는 노동자들의 일상적 불만이 조직화되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이 때문에 정부는 1978년 서둘러 노동자들의 분임토의의 주제를 제한해야만 했다. 조공 새마을운동은 '근로자를 가족처럼, 공장일을 내 일처럼'으로 대표되는 공장새마을운동의 전형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공장새마을운동이 1970년대 조공 노동자들을 통제했다고 보지만 공장새마을운동의 ‘주인의식을 갖자’ 구호는 의외의 결과를 낳기도 했다. 당시 노동자, 자본가, 공장새마을운동 단체임원 등의 최근 인터뷰를 보면, 공장새마을운동은 노동자들의 집단적 정체성과 능동성을 고양시켰고 의도치 않게 노동운동의 자양분으로 활용되었다.
요컨대 정부와 기업은 노동자들을 규율화하고자 여러 장치를 마련했지만 반대로 노동자들은 이러한 시도를 뒤집어 활용하였다. 조공 노조가 남긴 자료를 거슬러 읽는다면 조합원의 일상에서도 노동운동의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저자는 식민지기 대중동원의 양면적 성격(57쪽)과 1950년대 반일애국주의를 활용한 조공 노조의 활동(138쪽)을 강조한 바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이라면 1970년대 조공 노동자 분석에도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즉 급진적 노동운동을 발견할 수 없는 시기에도 노동운동의 잠재력이 존재한 방식을 드러낼 수 있다.
지금까지 독자의 입장에서 책을 정리해보았다. 더 나아가 한국사회에서 노동문제를 생각하면서 책을 읽어보도록 하자. 이 책은 절망적인(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희망의 밑그림을 그리는데 중요한 자원이 될 것이다. "이 책이 전하는 옛날 이야기가 오늘 어떤 기억이 되어 자리 잡을지"(11쪽)는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다.
이처럼 저자는 조공 노동운동의 前史로서 운동의 급진적 선택들을 연결시킨다. 이러한 서술은 일관성이 있으나 일부 보완을 필요로 한다. 해방공간에서 자주관리운동에 나섰던 노동자들은 공산당 통제마저 벗어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노조 지도부와 조합원의 관계는 어땠을까? 저자 말대로 행위를 기준으로 운동의 급진성을 평가하려면 지도부-조합원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또한 대부분 연구자들은 1950년대 전진한 그룹의 非자본주의적 요소를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그러나 신용옥은 저자와 달리 전진한 그룹과 이승만 계열이 가까웠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만약 저자의 말대로 전진한 그룹이 아나코-생디칼리즘적 성격을 가졌다면 그들의 정치지향보다 산하 노동조합과 맺었던 관계망을 분석해야 한다.
2부에서는 1960년대 조공의 민주노조운동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주장을 전개한다. 조공 노조는 1950년대 후반 사측과 싸움에서 승리하였고, 1964년 어용 지도부로부터 노조를 탈환하였다. 노동조합의 승리는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고무시켰고, 노동조합을 민주적이고 급진적인 방향으로 이끌었다. 조공 노조는 많은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배출하였다. 내부에서 비정규직과 연대하였으며 외부에서 국가관리 기업체 노동조합협의회 이름으로 적극적인 연대투쟁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조공 노조의 "노동 정치를 민주적으로 변혁하기 위한 도전"(257쪽)은 1969년 파업의 실패와 전투적 노조 지도부의 축출 이후 침체되었다. 단일 기업노조의 힘만으로는 경영합리화와 민영화, 그리고 국가의 노사관계에 대한 광범위한 개입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조공 노조의 전투성과 급진성은 1987년 7월이 되기까지 20년에 가까운 시기동안 동면에 들어갔다.(3부)
3부에서 느낀 두가지 아쉬움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1968~69년 조공의 투쟁에 대한 평가문제이며, 둘째는 유신체제기 노동현장 분위기에 대한 이견이다. 먼저 조공의 1968~69년의 투쟁은 조공 노조의 분위기를 악화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나 1970년대 노동운동의 전개과정을 설명하는데 실마리를 제공한다. 1960년대 후반 조공 파업의 특징들, 즉 (1)타공장보다 나은 급여를 받았으나 "생계비 이하의 임금"에 대한 분노(289쪽), (2)노동현장의 민족주의가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작업중단'의 영역으로 내려오면서 모호해졌다는 설명(292쪽), (3)노동조합이 기업주를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비판하면서 도덕적 우위를 확보한 사실(316쪽)은 1970년대 민주노조 작업장, 노동운동과 유사한 모습이다. 따라서 저자의 분석방법론을 다른 작업장, 다른 산업으로 확장하여 비교한다면 1960~70년대 노동운동의 연속성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유신체제기 노동현장 분위기의 문제이다. 1970년대 "노조의 회의 기록에서는 현장으로부터 들려오던 갈등의 목소리나 활기찬 토론이 사라"졌다.(375쪽) 하지만 조공의 1960년대 투쟁경험은 어떤 식으로든 내부에서 계승되었을 것이다. 저자는 연결고리를 1977~81년에 근무한 김진숙과 조공 노동자들의 장기근속에서 찾지만 설득력이 다소 부족하다. 저자가 1970년대를 일종의 '닫힌 시기'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1970년대 이전의 노동운동을 설명했던 방식을 1970년대에도 적용한다면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조공의 노동운동이 침체기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폭발하지 않았지만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들의 일상적 불만을 더 세밀하게 접근해야 한다.
저자는 조공 노조의 공장새마을운동의 적극적 추진을 노조 지도부의 순응으로 비판한다.(379쪽) 하지만 새마을사업과 노동조합 활동을 뒤섞어 이해했던 태도는 한국노총을 비롯하여 민주노조에서도 흔한 일이었다 오히려 새마을사업과 노동조합의 경계가 모호했기 때문에 한국노총은 1977년 정부와 기업인에게 공장새마을운동의 노동조합 참여보장을 요구할 수 있었다. 민주노조는 공장새마을운동이 유포했던 이상을 현실화시키는 방식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펼쳐나갔다. 분석수준을 노동조합 말단까지 구체화한다면 이런 양상은 더 잘 드러난다. 조공처럼 대규모 사업장이었던 한국전력에서 공장새마을분임토의는 노동자들의 일상적 불만이 조직화되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이 때문에 정부는 1978년 서둘러 노동자들의 분임토의의 주제를 제한해야만 했다. 조공 새마을운동은 '근로자를 가족처럼, 공장일을 내 일처럼'으로 대표되는 공장새마을운동의 전형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공장새마을운동이 1970년대 조공 노동자들을 통제했다고 보지만 공장새마을운동의 ‘주인의식을 갖자’ 구호는 의외의 결과를 낳기도 했다. 당시 노동자, 자본가, 공장새마을운동 단체임원 등의 최근 인터뷰를 보면, 공장새마을운동은 노동자들의 집단적 정체성과 능동성을 고양시켰고 의도치 않게 노동운동의 자양분으로 활용되었다.
요컨대 정부와 기업은 노동자들을 규율화하고자 여러 장치를 마련했지만 반대로 노동자들은 이러한 시도를 뒤집어 활용하였다. 조공 노조가 남긴 자료를 거슬러 읽는다면 조합원의 일상에서도 노동운동의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저자는 식민지기 대중동원의 양면적 성격(57쪽)과 1950년대 반일애국주의를 활용한 조공 노조의 활동(138쪽)을 강조한 바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이라면 1970년대 조공 노동자 분석에도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즉 급진적 노동운동을 발견할 수 없는 시기에도 노동운동의 잠재력이 존재한 방식을 드러낼 수 있다.
지금까지 독자의 입장에서 책을 정리해보았다. 더 나아가 한국사회에서 노동문제를 생각하면서 책을 읽어보도록 하자. 이 책은 절망적인(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희망의 밑그림을 그리는데 중요한 자원이 될 것이다. "이 책이 전하는 옛날 이야기가 오늘 어떤 기억이 되어 자리 잡을지"(11쪽)는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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