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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로 그려낸 노동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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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동사연구소 작성일15-05-14 18:32 조회7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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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로 그려낸 노동의 역사
이재성 (성공회대 연구교수)
※ 기획 취지: 노동사연구소 뉴스레터는 ‘노동과 아카이브’를 중심 키워드로 하여 다양한 학문 영역에서 활동하는 젊은 연구자들을 소개할 것이다. 이번 호부터 세 번에 걸쳐서 산업화와 노동을 주제로 연구와 작품 활동을 하는 세 사람을 소개하고자 한다. 가장 먼저 미술을 전공하고 있는 김진주 작가의 최근 개인전인 <합창과 독백>전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2014년 수원문화재단의 유망예술가 지원사업의 후원을 받아 경기도 지역의 근현대 산업사와 문화사를 함께 연구하고 작품으로 풀어내는 세 사람을 만났다. 미술전공의 김진주, 정주영과 건축 전공의 이성민은 연구와 작품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데 이들의 인연은 2014년 4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 The Anyang Public Art Project)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건축기자와 설계디자이너로 일하다 현재 프리랜서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이성민은 4회APAP의 주요 전시장소인 (전)유유산업 부지에 들어선 ‘김중업 박물관’의 리모델링프로젝트를 기록하고, 공간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전시하는 일을 담당했었다. 1950년대 말부터 1970년대까지 제약회사였던 유유산업의 안양공장을 설계한 사람이 바로 한국 근대 건축계의 큰 인물인 김중업이었다. 안양시는 2007년에 공장이 있던 부지를 매입하여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정주영은 현재 광주에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아카이빙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데, 서울대 대학원에서 “파스큐라(PASKYULA)의 미술론”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파스큐라’는 1923년 9월에 결성된 사회성이 강한 문인들의 모임이다. 결성 이후 ‘민중과 민족의 현실을 개혁하기 위한’ 민중예술론을 펼쳐나가면서 1925년 8월에 카프(KAPF, Korea Artista Proletaria Fedseratio)를 결성되는 모태가 되었다. 이성민과 정주영의 작품과 활동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에서 다루기로 하고, 이번 호에서는 김진주 작가의 이야기를 주로 소개하고자 한다.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조형예술학을 전공하고 있는 김진주는 최근 <합창과 독백>전을 개최하였다.(2014. 12. 30. ~ 2015. 1. 10. 수원시가족여성회관 문화관) 이 전시는 작가의 개인전이지만 이성민과 정주영이 기획자로 참여하고 있다. 기획자들과 작가는 수원의 생산 공간을 테마로 삼아 공장, 노동자, 노동문화사를 조사하고, 지역 아카이브에 구축되어 있는 근대화 과정의 이미지와 영상, 그리고 소리들을 수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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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합창과 독백> (Collective and Individual Chorus, 2014) 중 한 장면
영상, 흑백, 사운드, 2분 29초
사진 아카이브: 수원시청 소장자료, 수원시사편찬위원회 제공
출판물을 위한 변형, 영상 캡쳐 이미지 위에 8개의 키워드: 대기/공기, 합창, 울음/울림, 공장, 숲, 군중, 거리/길, 분수/봄  

도시 공간에 흩어져 있던 다양한 ‘역사의 흔적들’을 가지고 작가는 ‘소리’를 중심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사실 소리는 미술 전시가 아닌 공연의 대상이다. 소리는 공간이 아니라 시간 속에 살며 찰나 속에서만 실존한다. 작가는 역사의 소리, 생산의 사운드를 발굴하여 공간 속에 던짐으로써 ‘역사 경관’의 하나로서 ‘사운드 스케이프’(sound scape)를 재현하였다. 작가의 글을 편집하여 ‘사운드 스케이프’을 설명하자면, 그것은 보는 대상으로서의 풍경(landscape)과 달리 몸으로 접하는 진동과 울림을 매개로 역동적으로 재구성되는 체험의 ‘배치’ 정도로 정의된다.
작가의 영상작품 <연습>을 예로 들어 보자. 작업 과정 중에 인터뷰한 전 선경마그케틱스 노동자 차기영 씨는 자신의 노동의 경험과 기억을 소리로 재현했다. ‘꽈과과과광!’하며 기계의 행동과 소음을, 생산의 순간을 온 몸으로 표현한다. 작가는 영상에서 의도적으로 그를 직접 등장시키지 않길 택했고, 기계 소리를 기억해낸 그의 동작을 작가 스스로 반복하는 장면을 그려낸다. 작가의 몸짓을 통한 그의 기억과 재현은, 영상 마지막에 삽입된, 신파풍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전달하는 “공장의 기계소리는 역동하는 생명의 상징”이라는 국가와 자본의 문장과 해석에 도전하는 욕설과 주먹질로 ‘들린다’. 듣는 행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가는 영국의 토머스 드 퀸시를 인용하여 이렇게 주장한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는 반작용이 개시되었음을 알리는 소리다.” 해석이 듣기를 규정해서는 안 된다. 진짜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해석과 문장 이전의 ‘소리 그 자체’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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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연습> (Practice, 2014) 중 한 장면
영상, 컬러, 사운드, 4분 29초
사진 아카이브: 선경마그네틱스 직원 연수교육 1989년 4월 야유회, 차기영 제공; 등화관제훈련 1980년 6월 25일, 1981년 9월 15일, 1982년 7월 30일, 수원시청 소장자료, 수원시사편찬위원회 제공  

또 다른 작품 『A면 B면』은 선경마크네틱스의 생산품이었던 카세트 녹음테이프를 매개로 구성되었다. 옛 노래 테이프들이 수집되고 ‘공 테이프’에는 공장지대에서 발생하는 소음들이 기록되었다. 테이프의 B면에는 중고서점에서 직원들이 바코드를 찍는 소리가 녹음되어 있다. 낡은 카세트 플레이어를 뒤집었을 때 ‘삑, 삐-삑, 삑-’하는 디지털 시대의 ‘귀에 익은’ 소리들이, 돈 쓰는 소리들이, 돈 벌리는 소리들이, 노동하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가상의 화폐들의 노래가 도열한 계산대를 통해 합창이 될 태세이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A의 배면, 즉 B면에 대기하고 있는 소리들은 문 두드리는 소리와 같다. 살아남은 이 소리는 정지의 적막을 깨고 사건의 방향을 뒤집는다.”

작가는 지역, 산업, 노동에 대한 ‘경청’ 행위를 통해서 도시가 발산하는 다양한 소리와 소음, 메시지와 노이즈들을 ‘합창과 독백’이라고 말한다. 공동 기획자 정주영은 이 전시의 한 모티브로 플라톤의 『국가』를 언급하며, 플라톤에게서 이상적 공동체의 규모는 ‘한 웅변가의 목소리가 잘 들리는 최대치’로 계획되었다는 해석을 지지한다. 사회과학과 역사학 속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노동의 ‘소리’에 대한 이들의 연구와 실험은 우리에게 많은 지적 자극을 제공하고 있다. 다음 호에는 이성민과 정주영, 두 사람의 생각과 작업들을 연이어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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