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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 노동의 한 단면 : 영인본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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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동사연구소 작성일15-05-14 15:39 조회6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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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사연구소 아카이브 영인본 이야기1
디지털 시대, 노동의 한 단면 : 영인본 작업
김종권(고려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
노동관련 자료를 영인본으로 만들다
지난 2013년 노동사연구소는 많은 노동단체 및 사회단체로부터 노동관련 자료를 받아서 그 자료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했다. 받은 자료들은 1만 4천 여종이 넘는 문건과 자료들이었다. 한 장짜리 유인물에서부터 수십 장짜리 문건과 자료집들이었다. 그 자료들을 일일이 스캔하고, 스캔 자료들을 분류하고, 이 분류된 자료들을 관련 분야별로 다시 분류하여 책으로 엮는 작업을 한 것이다. 이는 실로 방대한 작업이었다. 우선 한 장짜리 유인물에서부터 수십 장에 이르는 문건과 자료집을 일일이 스캔을 하고 스캔한 자료들의 문헌 기초 정보를 목록으로 기록했다. 문헌의 상자번호와 철 번호, 문헌 제목, 생산처와 생산일자, 페이지수와 스캔날짜 등으로 기록하는 작업이었다. 혹시라도 빠진 페이지가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그 자료집의 페이지 수와 디지털화된 페이지를 꼼꼼히 확인해야 했다. 이 문헌 기초 정보를 다시 11개의 대범주로 나눠 분류하고, 그 분류된 자료들을 다시 소범주로 분류하는 작업이 수행되었다. 분류 작업은 중복된 자료들을 검토하는 일과 병행되었다. 실제로 일부 문헌은 한 문건의 부분 자료이기도 했다. 이렇게 분류한 자료들을 다시 교차확인을 하고 난 후, 대범주와 소범주로 나눠 분류된 자료집들을 최종적으로 모아 책으로 엮었다.
『모던타임즈』와 ‘디지털타임즈’
영인본. 사전적의미로는 원본을 사진 촬영해, 그것을 원판으로 하여 과학적 방법으로 복제한 책을 말한다. 즉, 촬영한 원본을 전자적 장치를 통해 볼 수 있도록 한 자료인 셈이다. 80년대 후반에 대학을 다녔던 필자는 도서관에서 자료검색을 위해 옛 신문의 영인본을 찾아보던 기억이 있다. 그 때는 디지털화가 지금처럼 이루어지지 않아 자료를 찾기 위해서는 영인본의 자료들을 일일이 읽으면서 찾아야 했다. 영인본 작업이 워낙 돈과 시간, 인력이 많이 소용되는 일이었기에, 디지털 기기가 지금처럼 발달하기 전에는 그것이 일부 미술관이나 신문사, 정부 기관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기기의 발달은 그 작업의 양과 속도는 물론 필요 인력까지도 변화를 시켰다. 대규모 자료를 스캐너라는 전자 장치의 도움으로 소수의 인력으로도 빠르게 복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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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기기의 발달이 사람의 노동에 편의를 제공한 것은 틀림없지만, 사람의 노동(labour)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어떠한 일(work)도 제대로 진행될 수 없다는 것 – 이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우리는 종종 ‘이진법이라는 커뮤니케이션’을 사용하는 디지털 자료들이 수많은 노동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노동사연구소의 영인본도 그 예외는 아니다. 한 장짜리 유인물에서부터 수십 장의 문건과 자료집에 이르기까지의 스캔 작업은 단순하면서도 지루한 노동이었다. ‘기계화된 톱니바퀴사이를 지나다니듯’ 묘사된 『모던타임즈』가 영인본 작업을 하는 ‘디지털타임즈’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해당 페이지를 스캐너 위에 올려놓고 읽어낸 후 다음 페이지를 올려 다시 읽어 디지털화하는 작업의 반복 - 이 작업이 디지털 시대의 노동의 한 단면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가장 미숙한 건축가가 가장 뛰어난 벌과 구별되는 점은 실제로 건물을 세우기 이전에 머릿속에서 그 구조를 미리 구상한다는 사실이다. 모든 노동 과정의 마지막에는 노동을 시작할 때 노동자의 상상력 속에 이미 존재하던 결과가 나타난다.”고 서술한 바 있다. 구상과 실행의 통일.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도 우리의 노동은 여전히 ‘구상과 실행의 분리’라는 테일러주의 아래서 생산 활동을 담당하고 있다. 스캔을 담당하는 사람들, 분류를 담당하는 사람들, 범주를 나누고 재분류를 하는 사람들, 디지털화된 자료를 책으로 엮어내는 사람들.
 

사용자들에게 영인본의 몫을 남겨두다
영인본은 디지털 시대가 낳은 노동의 산물인 동시에 지금이 디지털 시대임을 보여주는 방편이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은 『모던타임즈』의 노동과 큰 차이가 없으며, 테일러주의의 ‘실행과 구상의 분리’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그렇다면 영인본 작업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영인본 작업은 ‘교환가치’를 위한 노동이 아니었다. 현대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상품화하고, 상품은 그 교환을 통해 가치를 실현한다. 그러나 노동사연구소의 영인본 작업은 자본주의적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다. 영인본 작업은 ‘교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용’을 위한 작업이었다. 따라서 영인본은 사용되지 않으면 자신의 가치를 실현할 수 없다. 노동사연구소의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시대의 노동’을 기꺼이 감내하고, 그 완성을 기뻐한 것은 이 자료가 사람의 ‘필요’를 위해 ‘사용’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몫은 ‘사용하려는 사람들’에게 있다.
마르크스는 『경제학 철학 수고』에서 “동물도 생산을 한다. …… 동물은 일면적으로 생산하지만, 반면에 인간은 보편적으로 생산한다. …… 동물은 자신이 속해 있는 종(種)의 규준과 욕구에 따라서만 형태를 만들지만, 반면에 인간은 모든 종의 규준에 따라 생산할 줄 알고 어떤 경우에나 대상에 고유한 규준을 도모할 줄 안다.”고 서술한 바 있다. 영인본은 보편적이며, 미적(美的)이다. 어느 일방의 사용을 위해 생산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편적이며,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기 때문에 미적이다. 영인본은 생산된 자료를 가공하지 않았다. 당시의 인식과 당시의 서술 방식과 당시의 표현 수단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이진법의 커뮤니케이션’이 지배하는 현재에는 제대로 볼 수 없는 ‘필사된 글씨’를 볼 수도 있다. 필사된 글씨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영인본이 ‘미적 법칙’을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 줄 것이다. 그 미(美)를 느끼는 것도,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도 이제는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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