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트>를 통해 본 역사의 반복과 오래된 미래 : ‘비정규직 문제’를 중심으로 (정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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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동사연구소 작성일15-02-27 14:06 조회3,346회 댓글0건본문
영화 <카트>를 통해 본 역사의 반복과 오래된 미래 : ‘비정규직 문제’를 중심으로
정규식
(노동사연구소 / 성공회대 사회학과 박사수료)
2014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 추도 44주기에 맞춰 개봉한 영화 <카트>는 한국사회 최대 이슈인 비정규직 노동문제를 전면적으로 조명한 최초의 상업영화이다. 손익분기점인 170만 명 관객동원에는 실패했지만, 총 누적관객 814,196명(2015년 1월 19일 검색기준)이 관람했으며, tvN 드라마 <미생>이나 네이버 웹툰 <송곳>과 함께 비정규직 문제가 결코 ‘타인’만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이자 내 가족, 내 이웃의 문제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의 몰입도를 더욱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파업이라는 것이 특정 시위선동 세력 혹은 사회 불만 세력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마트에서 흔히 보는 우리네 어머니들과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매우 감동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또한 극중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대형마트 여성 비정규직 문제뿐 아니라, 감정노동, 싱글 맘 노동자, 청소용역 노동자, 88만원 세대인 20대 취준생, 청소년 알바노동자 등 당면한 사회현실 문제들을 집약하여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도 사회적 의미가 매우 큰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몇 가지 아쉬움이 남아있다. 물론 이 아쉬움은 영화가 미처 보여주지 못한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한 것이기에 영화자체에 대한 아쉬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향후 우리 모두가 고민해 보아야할 과제라고 하는 것이 보다 적절할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몇 가지 아쉬움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 보고자 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카트>는 2007년 이랜드-홈에버 대량 해고사태와 이에 따른 노동자 파업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 이랜드 그룹은 홈에버의 비정규직 계산원을 포함한 계열사 노동자들에 대해 계약기간이 만료되기도 전에, 외주용역으로의 전환을 목적으로 일방적인 해고를 통보한다. 이에 반발한 약 500여명의 노동자들이 2007년 6월 30일 상암동에 위치한 홈에버 월드컵점을 점거하고 파업에 돌입했으며, 파업은 무려 512일간 지속되었다. 파업이 종료된 시점은 다시 우연히도 전태일 열사의 추모 38주기인 2008년 11월 13일이다. 협상결과는 해고자 28명 중 12명의 노조간부가 퇴사하는 것을 조건으로 16명의 노동자들이 복직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를 두고 노조간부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절반의 승리라는 평가가 있었다.
영화 <카트>는 이러한 홈에버 사건을 소재로 파업을 통해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주체로서 성장하는 과정, 그리고 옆에서 함께 싸우는 동지들과 우정과 연대를 경험하는 과정을 잘 재현하고 있다. 점거파업을 하면서 함께 쪽잠을 자고, 음식을 나누고 삶의 이야기를 나누며 울고 웃는 장면들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왜 대형마트 회사가 이들을 일방적으로 해고할 수 있었는지, 이에 대한 법적 근거는 무엇이었는지, 다시 말해 거대자본의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법적토대를 마련한 ‘국가’의 역할은 다루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실제 홈에버 월드컵점 점거농성 개시일이 2007년 6월 30일이라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바로 다음 날인 7월 1일에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되는 것에 대한 명백한 저항의 의미였다. 참여정부 시기인 2006년 11월 30일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국회를 통과한 ‘비정규직보호법’은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노동위원회법 등을 포괄하며, 2007년 7월 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 적용, 2008년 7월에는 100인 이상 사업장, 2009년 7월 1일에는 5인 이상 사업장으로 그 시행범위가 점차 확대되었다. ‘비정규직보호법’의 하나인 ‘기간제근로자보호법’ 제4조 제2항은 “기간제 근로자는 최대 2년까지만 고용 가능하고 2년을 초과할 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간주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당시 기업들은 이 법을 ‘2년 이내에는 언제든 해고 가능함’으로 인식했으며, 실제로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년 계약완료 이전에 해고됨으로써 이 법은 비정규직보호법이 아니라, ‘비정규직해고법’으로 통용되었다. 홈에버 노동자들 역시 이 법의 희생양이었던 셈인데, 이를 모티브로 삼은 영화에서 이처럼 중요한 측면을 보여주지 않은 것이 매우 아쉽다. 물론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룰 수는 없었겠지만, 영화의 도입부에 이 법의 시행에 관한 뉴스보도라든지 신문기사가 나오는 장면 한 컷이라도 넣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만약 그랬다면 이들의 투쟁이 결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 전체의 문제였으며, 기업의 이윤만을 보호하는 정부정책의 한계를 드러내고 이에 저항했던 사회전체의 문제임을 보다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었을 것 같다.
영화가 이를 보여주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더욱 큰 이유는 당시 비정규직 해고의 기초가 되었던 법안이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14년 12월 29일 박근혜 정부에서 ‘비정규직종합대책’이라는 이름의 훨씬 더 심각한 형태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핵심내용은 기간제나 파견노동자의 고용기간을 현재 2년에서 최대 4년으로 늘리고 파견노동의 범위를 대폭 확대한다는 것인데, 현장 노동계를 비롯한 노동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비정규직 양산대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무엇보다 비정규직 사용의 ‘기간’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 사유’를 제한하는 쪽으로 법 제정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영화 <카트>의 실제 주인공들도 7년 전 정부의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으로 인한 부당해고에 목숨 걸고 저항했는데, 이제 다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제한 기간을 연장함으로써 더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되는 것을 묵과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7년이 지난 2014년,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상 처음으로 600만을 넘었으며, 이는 전체 노동자의 32.4%로 노동자 3명 중 1명이 비정규직이라는 말이다. 또한 정규직과의 임금격차는 10년 전의 두 배 가까이 벌어져서 정규직 월급의 56% 수준인 145만 3천원이라고 한다. 당시 ‘비정규직보호법’ 제정의 주역이었던 문재인 의원이 영화 <카트>를 관람한 후 ‘미안함’을 표시했지만, 그의 개인적 사과와는 무관하게 ‘비정규직보호법’의 폐해는 여전히 현실에서 노동자들을 옥죄고 있다. 따라서 카트를 밀며 돌진하는 장면으로 끝나는 영화의 결말처럼, 아직 비정규직 고용안정을 위한 싸움은 끝나지 않았으며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당시 투쟁에 참여했던 이들의 삶이다. 특히 끝내 퇴직된 노조간부들 12명의 삶은 그 사건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누군가는 노동활동가로, 또 누군가는 다른 노동현장의 노동자로서 삶을 지속하고 있겠지만, 억대의 손배소 소송문제, 임금체불로 인한 부채와 신용불량자로의 전락, 그리고 장기 농성으로 인한 가정불화와 범죄자라는 사회적 낙인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무엇보다 불안과 우울증, 자살충동까지 일으키는 극심한 트라우마는 이들이 평생 짊어지고 가야하는 굴레가 되었다.
지금도 기륭전자, 재능교육 등 장기 농성투쟁이 진행 중이고, 이 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공으로 올라가고 바닥을 기어가며 그들의 존재를 온 몸으로 외치고 있다. 영화는 파업이후 이들의 삶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들을 더 이상 ‘투명인간’이 되지 않도록 함께 그 짐을 나눠 져야 할 것이다.
2007년 6월 30일 바로 그날, 수많은 시민과 학생들이 파업노동자와 함께 했듯이, 그리고 한진중공업 고공농성 투쟁을 지지하던 희망버스 탑승자들처럼. 왜냐하면 이것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해방’, ‘나의 미래’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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