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역사다” (이승일, 김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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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동사연구소 작성일15-02-27 14:06 조회2,571회 댓글0건본문
“기록은 역사다”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이승일 선임연구원
인터뷰의 첫 번째 대상으로 한국국가기록연구원(http://www.rikar.org)을 선정했다. 한국국가기록연구원은 1999년에 설립된 민간학술연구단체이다. 이 단체는 공공기록연구의 불모지에서 기록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공공기록물관리법 제정, 자료관과 기록관 설립, 기록관리정책연구, 전문인력 양성 등의 노력을 해왔다. 기록을 통해 인간의 기억을 남기고 이해하려는 점은 우리 연구소의 지향과 일치한다. 다음은 인터뷰에 근거한 서술이다.
1. 한국국가기록연구원은?
24절기의 첫 번째 절기인 입춘을 하루 앞둔 날, 봄의 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따뜻한 오후의 햇볕 속에서 한국국가기록연구원을 찾았다. 이 단체에서 8년 동안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승일 선임연구원(이하 ‘이승일 선임’)을 만나 인터뷰했다.
한국국가기록연구원(이하 ‘연구원’)은 공공기록 관리와 연구를 통해 체계적인 기록관리 체제를 구축에 선도적 역할을 한 산증인이다. 이승일 선임이 들려 준 연구원의 결성과정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일단 90년대만 해도 기록관리 틀이 정립이 아직 못된 상태였습니다. 1998년에 이르러서야 기록관리법이 제정되었고, 2000년에 기록관리법이 시행됐거든요. 역사적으로 따지면 이제 겨우 15년 된 법입니다. 그만큼 우리나라 기록관리가 과거에 얼마나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못했느냐 반증을 하는 거구요. 그런 고민이 계속 있었던 거죠. 공공분야의 기록관리가 투명해야 나라의 기틀이 바로 잡히지 않겠어요? 공공분야 기록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고 있음을 개탄을 해서 주로 역사학쪽 이나 문헌정보 학자, 연구자 분들이 우리나라의 기록관리를 좀 더 매끄럽게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기록관리를 만들어 보자 그렇게 해서 이 단체가 결성이 된거죠.”
2. 기록의 의미와 중요성
그렇다면 연구원이 생각하는 기록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승일 선임은 기록을 역사세우기, 나라세우기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연구원은 ‘기록이 바로 역사다, 기록이 지켜야 역사를 지킬 수 있다’라고 항상 생각합니다. ‘기록이 살아있는 나라, 기록이 아름다운 나라’를 만드는 게 저희 연구원의 가장 기본적인 사명이자 미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중요한 기록관리에 대해 사람들의 무관심과 이해부족에 대해서그는 안타까워한다. 기록관리는 소수의 기록연구사만의 업무가 아니라 공공기록, 공공문서를 다루는 모든 사람의 업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가장 큰 애로사항은 무관심인 것 같습니다. 기록관리에 대한 무관심 얘기를 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지금 전국의 공공기관에 전부는 아니고 많은 공공기관에 기록연구사라고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이 배치되어 있거든요. 기록관리를 연구하는 사람이지요. 기껏해야 공공기관에 1∼2명 정도 있는 거고요, 국가기록원이 조금 많이 있고 보통 명칭이 기록연구사라고 합니다. 기관마다 한두명 있는 존재들이거든요 나라의 기록 관리를 하는 사람들이 숫자가 적은거죠. 지금까지 배출된 인원이 많지 않구요. 그 얘기가 바로 국가에서 기록관리에 대해서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가를 보여주기지 않은가 싶다. 기록물관리법이 제정된 지 벌써 16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학문적으로도 소외된 분야기도 합니다. 모르시는 분도 굉장히 많고요. 기록관리는 기관마다 연구사가 하나씩 배치되어 있기는 하지만, 기록관리는 연구사만의 일이 아니라 기록을 다루는 사람, 문서를 다루는 사람은 다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해야하거든요.”
기록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이승일 선임의 이야기는 최근의 기록물 관리를 둘러싼 정치현안에 대한 비판으로도 이어진다. 기록물의 성격을 ‘제멋대로’ 규정하고, 규정조차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가기록의 중요한 주체가 정작 국가기록의 의미와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몇 년 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상회담 내용이 공개 되어선 안되는 기록물인데 그게 무단으로 공개된 것에 대해서 저희 기록관리쪽의 전문가협회에서 성명서도 발표하고 그런 일련의 일들이 요 몇 년간 있어 왔습니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민감한 사안들은 지정기록물로 만들어 가지고 지정기록물은 대통령도 볼 수 없게 만든 거죠. 아예 차단을 한 거죠, 외부랑. 박근혜 정권에서도 이런 얘기를 했어요. ‘이명박 정부의 인사관련 자료 봐야되는데, 자료을 지정물로 하는 바람에 볼 수가 없었다’. 사람을 확인해야 인사를 하고 그러니까 그런 애로사항를 박근혜 대통령도 제기를 했었고 어제 뉴스에서는 이명박 정권에서 민감한 외교사안 다 지정기록물로 해가지고 현 대통령도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정말 개탄스런 일이다.”
“정권 교체를 한다고 기록관리를 잘 하는 대통령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록관리는 국가의 기틀을 확립하는 중요한 부분이거든요. 기록관리가 잘 되어있는 만큼 역사를 잘 보여주는 거고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고 숨기고 꺼려하고 이런 것들이 이해가 안된다. 국민들에게 뭔가를 알리면서 소통과 화합이라고 이야기해야 않습니까? (정작) 소통, 개방을 얘기하는데 뭐가 소통이고 뭐가 개방인지 전혀 모르겠어요”
이승일 선임이 기록과 국가기록물 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학술적 차원 뿐만 아니라 개인적 차원의 경험과도 얽혀 있다.
“제 경우 어릴적 이사를 많이 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 가지고 있던 일기장, 각종 소설이나 어릴 때 읽던 책들 이사 다니면서 다 없어졌어요. 제가 갖고 있던 것들은 지금 현재를 위해서 필요한 것 들 외엔 다 사라졌다고 보면 되지요. 그러다 보니 ‘내거 뭔가를 쓰고 남기면 내가 들고 가지 않은 한 이것을 제대로 관리하기도 힘들고 보존하기도 힘들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근데 항상 후회하고 있는 게 저희 연구원에서는 ‘인간과 기억’ 아카이브를 운영하고 있어요. 그게 뭐냐면 개인이든 단체든 공공기관이든 그들이 관리하기 힘든 기록물, 갖고 있자니 힘든 것을 기증을 받습니다. 수집을 해서 보존하고 관리해주고 필요한 경우는 웹을 통해서 기록물을 보여주고 그런 것들을 하고 있거든요. 어릴 시절 얘기를 하니 조금 울컥한데, 그런 것들을 수집하다보면 교수님들도 과거의 본인이 갖고 있던 가지고 있던 자료들 논문도 있을 거고 일기장 연습장까지 있습니다. 공부할 때 메모하던 연습장, 이런 거 정말 수십 년 전의 기록들이거든요. 교수님 연배가 50대 중반 초반 가는데, 30년 전 40년 전의 기록물이 아직도 있는 거예요. 그걸 보니까, 나는 왜 저렇게 못했을까 그런 게 아쉽더군요”
기록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들려달라는 인터뷰어의 요구에 그는 연구원 10주년 행사 때의 진땀나는 일화를 들려주었다. 10주년을 맞아 10년간의 역사를 영상물로 만들었는데 사전 점검에서는 잘 나오던 영상물이 본 행사에서는 정작 나오지 않아 식은땀을 흘렸다는 이야기다. 기록물 관리와 준비를 잘해도 정작 필요한 곳에서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했다는 이야기였다. 다른 에피소드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일화였다.
“가장 큰 에피소드라고 한다면 안타까운 일인데, 작년도에 4월 16일에 있었던 세월호 참사입니다. 저 뿐 아니라 연구원도 마찬가지고, 교수님들도 마찬가지고. 너무 큰 일이었고 너무 가슴 아픈 일이었잖아요? 지금 원장님이신 김익한교수님께서 그 일이 있고 나서 연구원분들하고 얘기를 하다가 ‘그분들께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봐야겠다’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참사와 관련된 기록물을 수집하고 보전하는 일을 우리쪽에서 해보자. 우리는 기록관리 분야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우리가 가서 요리를 할 수는 없잖아요? 그 분들을 지원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보니까, 그러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을 하자 그렇다고 한다면 참사와 관련한 기록물을 잘 수집하고 기증받고 보존도 하고 필요에 따라 전시도 하고 또 오프라인 전시도 하고 외부로 전시도 하고 이런 것을 계속 계획 하고 추진을 했었던 거죠. 일년은 안됐지만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그는 연구원의 사업분야를 공공분야 뿐만 아니라 민간 분야까지도 확대하고 있는 중이라고 이야기한다.
“기존까지는 계속 공공분야 기록관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정책연구를 하고 거기에 따른 연구용역을 수행하고 교육을 하고 컨셜팅을 하고 필요한 경우 교육도 하고 그렇게 해왔는데 정작 민간분야에는 못했다는 거죠. 기록관리회에서도 민간분야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어요. 몇 년 사이에 있었던 일이거든요”
이러한 민간분야에 대한 작업은 용산참사, 밀양송전탑, 쌍용자동차, 일본군위안부 사건 등의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여러 가지 사회적인 이슈들이 많이 발생을 할 때, 항상 민간 쪽 힘없는 자 단체가 고통을 받는 것을 봤습니다. 저랑 특별히 관련이 없기 때문에 스쳐 지나가는 얘기였다. 제가 연구원에 근무하면서부터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회에서 소외받은 사람을 기억해 주고 기록을 해주고 그분들을 위해서 메시지를 이 사회에 전달할 수 있는 일을 한번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만 했다. 그러다 최근에 기록학계에서 민간분야에 관심을 갖고 여러 논문도 쓰고 여러 가지 일도 벌리고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민간분야 활동도 하면서 이런 것들을 어떻게 풀까 무엇을 통해서 할까 구체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무래도 지금 웹 2.0이다 3.0이다, 이런 시대아닙니까? 참여하고 소통하고 개방하는 그런 것들을 누구나 스마트폰 기기를 갖고 있으니까, 그러면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 주고 뭔가 거기에다가 기록을 보존하고 축적을 해서 제대로 일반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만들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죠.”
3. 에필로그
끝으로 기록관리에 대해 연구자들이나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말을 해달라는 질문에 그는 “기록을 생활화 했으면 한다”고 했다. 의미있는 기록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록이 남아서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기록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아주 쉽게 생각하면 내가 오늘 남긴 짧은 포스트잇에 적은 메모도 기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기록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사장되는 기록이 되니까, 내 역사하고는 전혀 관련 없는 백지가 되는 거죠. 그런 것들이 본인에게 의미 있다고 생각하면 이거를 잘 보존하고 관리해서 자기 후대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도록 하거나 자기 스스로 관리를 잘해서 지나가는 세월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을 만들면 좋지 않을까, 기록관리를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쉽게 생각해서 기록은 우리 생활 속에 있는 거다. 일상 기록들에 관심을 갖고 내가 평소에 노트하는 거나 말하는 거나 이런 것들을 기록을 남겨서 잘 보존하고 관리하면 좋겠다”
기록은 행위자의 기억을 남기는 작업인 동시에 사회화하는 작업이다. 국가가 가장 큰 에이전시(agency) 중 하나이긴 하지만, 민중도 사회의 큰 에이전시이다. 기록되지 못하는 기억은 입과 입으로 전승되기도 하지만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이 기억을 남기는 것이 기록이다. 기록은 역사 속에 ‘보이지 않았던 존재’였던 민중이 ‘보이는 존재’가 되는 것이며, 타자화 됐던 사람이 주체가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지금도 여러 곳에서 인간의 기억을 기록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기록의 의미를 알기에 더 매달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의 기억이 아니라 시간이 지난 이후에도 역사로서 남아 있을 기억과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는 사람들의 노고와 사명감은 항상 커다란 의미로 남을 것이다.
인터뷰 정리자 김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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