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칼럼> 철도파업과 경찰의 민주노총 강제 진입 / 이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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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동사연구소 작성일15-02-16 16:19 조회2,200회 댓글0건본문
철도파업과 경찰의 민주노총 강제 진입 - (2013년 12월 23일 내일신문)
이 종 구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나른한 일요일 오전을 즐기던 시민들은 경찰의 민주노총 본부 진입을 중계하는 텔레비전 화면을 보고 경악했다. 다수의 시민들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에 터진 용산 참사를 연상했다. 유신시대를 기억하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세대는 YH여공들의 농성을 해산하려 신민당사에 들어간 경찰이 김영삼 당수를 끌어내고 국회의원들을 두들겨 패던 광경을 떠올렸다. 이 과정에서 김경숙 열사가 추락사하고 정치는 파국으로 치달아 제일 야당 당수의 제명과 부마항쟁, 궁정동의 총격전과 박정희 대통령 피살, 12 12 쿠데타와 신군부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지 일 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터진 대형 사건은 당분간 한국 정치의 중심적 쟁점이 될 것이 확실하다.
경찰의 영장 집행은 물론 합법적인 일이다. 그러나 제도에 규정된 법적 절차를 밟았다고 사회적 정당성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사건의 본질은 철도의 민영화 문제, 나아가 공공서비스 부문의 운영 체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미진한 것에 있다. 노동문제는 오히려 부차적인 것이므로 고액 임금을 받는 정규직 노동귀족의 행태가 어쩌고 하는 비판은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공성이란 무엇인가, 정부는 공공서비스를 어느 수준까지 책임지는 것이 마땅한가, 기업과 노조는 사회적 책임을 어느 수준까지 이행해야 할 것인가, 등의 원칙에 대한 논의가 없으면 합리적 해결 방안이 도출될 수 없다, 장기 누적 적자 해소를 위해 경쟁 체제를 도입하자는 논리는 민간 기업에 맡기면 모든 것이 잘 된다는 시장원리에 대한 신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시장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면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정부는 진작 소멸했을 것이다.
진짜 걱정은 앞으로의 일이다. 정부 여당은 물론이고 제일 야당, 진보 정당도 공공서비스의 운영과 노사관계의 기조에 대한 입장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모두가 현안이 생기면 부딪쳐 해결한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시민들이 불안해 하는 것은 욕을 먹을 각오를 하면서 자기 입장을 제시하고 추진하는 정치 주체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사 카메라 앞에서 당장 듣기 좋은 소리하며 큰소리치는 여야 정치권은 오히려 현안 해결을 늦추고 있다. 시민들은 책임있는 소신 발언을 할 수 있는 통 큰 정치인을 기다리고 있다.
분쟁이 해결되려면 우선 당사자들이 상대를 인정해야 하며 쟁점을 공유해야 한다. 창구와 안건이 확실해야 사건이 풀리기 시작한다. 경찰의 민주노총 진입은 분쟁 해결에 필요한 기초적인 토대를 파괴했으므로 정치적으로는 졸작이다. 더구나 철도노조 집행부 검거에도 실패했으니 체면도 구겨졌다. 노사문제를 공권력으로 해결하면 일시적으로는 조용해질 수 있으나 나중에 더 큰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YH사건을 돌이켜 보면 사장의 외화 도피 사건으로 시작된 분쟁을 원칙대로 처리하지 않고 정부 당국이 이념적 낙인을 찍어 정치적 사건으로 키우다가 진짜 대형 사고가 터졌다. 노사문제 해결의 기본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가치관과 이념을 둘러싼 분쟁과 단기 이익 분쟁을 구분하여 처리하는 것이다. 철도 파업 문제는 철도 노사가 대화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한국은 의회 민주주의 국가이니 정치권이 책임 의식을 느끼고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
지금 정치권과 노동계, 시민사회 여론 주도층이 해야 할 일은 사태의 본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미 제도적으로는 노사정위원회를 비롯해 각종 대화 창구가 마련되어 있다. 철도와 공공사비스의 운영은 어차피 경제 체제 전반에 대한 토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이번 기회에 한국의 사회 경제 정책에 대한 솔직한 대화가 시작될 수 있으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험난한 국제 정세 속에서 정치 주체들이 꼼수와 단기적 자기 이익에 집착하면 국가적 재앙이 시작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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