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연구소

한국연구재단 2010년 한국사회과학연구(SSK지원)

연구활동

RESEARCH

연구원칼럼

<신문로 칼럼> 북경대학과 에드가 스노우의 무덤 / 이종구

페이지 정보

작성자 노동사연구소 작성일13-06-01 15:38 조회591회 댓글0건

본문

<신문로 칼럼>북경대학과 에드가 스노우의 무덤(2004년 7월 30일 [내일신문]) 

이 종 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북경대학과 에드가 스노우의 무덤

처음으로 북경에 가 보았다. 길이나 건물부터 시작해 모두 규모가 크고 가는 곳마다 사람이 많았다. 초대한 대학 관계자와 점심을 같이할 때에도 음식이 너무 많이 나와 반 이상 남겼다. 자금성을 천안문으로 들어가 반대편으로 걸어 나오는데 3시간 이상이 걸렸다. 서울의 경복궁은 전각 하나 정도에 불과했다. 중일전쟁이 시작된 노구교에도 가 보았다.

아큐정전을 쓴 작가 노신이 살던 집과 동네는 기념관으로 보존되어 있었다. 정원에 있는 나무에도 노신이 어느 때 심은 것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기념관 입구 벽에는 노신의 친필원고가 새겨져 있었다. 북경대학에 재직하고 있을 때 노신이 멸실되어 가는 중국 문화를 보존하고자 비석의 탁본을 뜨고 골동품을 수집하느라고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중국 공산당이 문학을 통한 계몽활동으로 중국 혁명의 정신적 기초를 놓는데 공헌한 문인을 기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인들이 역사를 보존하는데 쏟는 정성에는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시절에 읽던 동화부터 시작해 죽은 직후의 데드마스크까지 전시되어 있는 기념관에는 언제나 시대적 상황에 정면으로 대응하며 자신을 개조해 온 지식인의 발자취가 남아 있었다. 노신 기념관은 중국 혁명 박물관이기도 했다.

북경대학 캠퍼스는 짜임새가 있고 활기에 차 있었다. 기와 지붕을 한 높은 탑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물을 저장하는 시설이었다. 옛날 연경대학 시절에 선교사들이 중국 문화와 친숙한 건물을 짓도록 배려하다 보니 물통까지 멋있게 만들었다고 한다. 사무용 빌딩같이 생긴 현대식 건물들은 최근에 지은 것들이라고 한다. 1919년에 5.4 운동이 일어났던 캠퍼스는 다른 곳이었다고 한다. 신중국 건국 후에 두 학교를 통합하면서 현재의 캠퍼스로 집중되었다.

역사 보존하는 중국인 정성에 감복

호숫가를 따라 걷다 보니 에드가 스노우의 무덤이 있었다. 묘비에는 영어로 ‘중국의 미국인 친구’라고 새겨져 있었다. 에드가 스노우가 1936년에 연안 시절의 중국 공산당을 취재하여 쓴 ‘중국의 붉은 별’이라는 르포는 20세기 저널리즘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중국 공산당의 존재와 주장을 바깥 세계에 제대로 알린 은인이다. 물론 군사정권 시절의 한국에서 ‘중국의 붉은 별’은 가장 위험한 금서였다. 묘비 앞에서 필자는 카투사로 근무하는 선배가 미군 도서관에서 빌려 온 ‘중국의 붉은 별’을 밤을 새며 단숨에 읽어 내려가던 당시의 흥분을 떠올렸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파란만장한 경력과 인간상이 무엇보다도 재미있었다. 수호지를 읽는 기분이었다고 생각된다. ‘중국의 붉은 별’의 앞부분에 나오는 군벌들은 아편장사로 돈을 벌고, 농민들은 굶어 죽어가던 당시의 실정에 대한 기록을 보면 누구나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어려운 시절에 찾아 온 기자를 북경대학 구내에 묻어 잊혀지지 않게 한 중국 정부의 역사의식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안내하는 교수에게 에드가 스노우의 부인으로 ‘아리랑의 노래’를 쓴 님웰즈도 같이 묻혀 있느냐고 지극히 한국적인 질문을 했다가 둘이 나중에 이혼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아리랑의 노래’는 님웰즈가 연안에서 만난 김산이라는 한국인 혁명가를 인터뷰한 기록물이다.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 무장 독립운동을 다룬 ‘아리랑의 노래’도 한국에서는 물론 금서였다. 독립운동에 대한 연구 자체가 불모지였던 1970년대에 필자는 몰래 국내에 반입된 ‘아리랑의 노래’를 읽고서 갖가지 영웅적인 무장투쟁을 조직한 의열단이 아나키스트가 주도한 운동이었으며, 만주에서도 민족주의자들이 소작인의 권익보호에 무관심했기 때문에 사회주의 계열의 무장투쟁이 호응을 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지식인 출신 운동가인 김산이 겪는 내면적인 고뇌에 대한 기록은 군사정권 시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솔직한 자기 고백이었다고 보인다.

과거 거론 않는다고 역사 없어지나

책에 전신 사진까지 나와 있는 주인공 김산 만이 아니라 자세한 경력이 소개되어 있는 그의 동지들의 실체에 대해서는 아직도 역사학계에서 명확한 규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아리랑의 노래’는 남한과 북한의 정권이 모두 인정하고 싶지 않은 독립운동 세력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중국 출장에서 돌아와 보니 국내에서는 얼마 전에 제주도에서 한국 대통령이 일본 수상에게 과거사를 문제 삼지 않겠다는 발언을 했다고 설왕설래가 많았다. 일본 우익이 과거사를 가지고 수시로 망언 파동을 일으키는 이유는 과거에 대한 해석이 현재의 위상을 규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이 과거사를 거론하지 않는다고 이미 존재하는 역사적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과거를 잊으면 고통스러운 결단을 내려야 하는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이 쉬워질 것이다. 환각제를 먹고 잠시 기분 좋아지는 것은 도피에 불과하다. 어느 나라에서나 역사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모습을 보면 현재의 정치 권력이 가지고 있는 속성, 능력, 자질을 쉽게 알 수 있는 법이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