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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칼럼> 역사 전쟁과 쓰레기 치우기 / 이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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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동사연구소 작성일13-06-01 15:38 조회4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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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칼럼>역사 전쟁과 쓰레기 치우기(2004년 08월 25일 [내일신문])



 이 종 구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이번 여름은 역사 전쟁의 계절이었다. 일본, 중국의 역사 왜곡도 짜증나는 일이었다. 중국은 최대의 무역 상대국이고 북한의 후원자이니 한국이 눈치를 살펴야 한다. 일본과 한국은 실질적으로 군사동맹 관계에 있다.

결국 답답하고 화는 나지만 항의도 제대로 할 수 없는 형세가 되어가고 있다. 더구나 국내에서 벌어진 과거사 청산 논쟁은 현실의 권력 투쟁과 맞물려 계속 확대되고 있다. 국내 역사 전쟁은 곧 모든 국민에게 직접 간접으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이대로 가면 추석날 아침에는 전국에서 현대사 논쟁이 벌어지게 되어 있다.

역사 전쟁은 여야의 구분도 헛갈리게 만들었다. 부친의 일본 헌병 경력을 감추다가 궁지에 몰린 여당의 신기남 의장을 오히려 한나라당이 두둔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처지가 비슷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친북 용공 행위도 조사하자고 물타기에 나섰지만 별로 약효가 없다. 왕년의 좌익 활동 경력을 거론하면 한나라당 중진의원들 중에도 곤혹스러운 입장에 빠질 사람이 여러 명 있으니 박대표도 답답할 것이다. 결국 친일이나 군사독재 얘기가 나오면 명분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보수진영은 먹고 살 걱정이나 하자고 경제위기론을 꺼내고 있지만 신통한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탈냉전 인정하기 싫은 지도층

지금 이러한 일이 왜 벌어지고 있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냉전이 끝났지만 한국 사회의 소위 지도층에는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세력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사회주의 이념에서 벗어나자 옛날의 중화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아시아의 패권국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중국의 지도층도 전체를 묶어두던 이념이 퇴색하고 지방과 소수 민족이 독자성을 주장하기 시작하면 옛날의 춘추 전국시대로 돌아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들은 소련연방이 페레스트로이카를 하다가 해체된 전철을 밟지나 않을까 경계하고 있을 것이다.

일본은 냉전시대에는 안보를 미국에 맡기고 경제적 실리만 챙기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고이즈미 수상을 비롯해 군사력 보유와 전쟁을 금지한 헌법 9조를 개정하여 보통국가로 변신하자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고 있고 미국도 이를 바라고 있다. 각료들이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도 이를 저지할 시민사회 세력이 사실상 없다. 냉전시대에는 공산당을 막아주고 있는 한국이 일본에게 안보적으로 중요한 파트너였다. 지금 일본에게는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포위망을 굳히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과는 잘 지내면 좋고 틀어져도 그다지 신경을 쓸만한 일이 아니다.

중국, 일본과 벌어지고 있는 역사 전쟁은 탈냉전과 개별 국익의 추구라는 국제정치 지형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의 소위 지도층은 이를 직시하는 것을 고통스러워 한다. 이들은 미국 품안에 있으면 따스하고 배부른데, 굳이 가출해 고생하는 불량 청소년이 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탈냉전을 인정하면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냉전시대의 유물들을 치워야 하는데 주류 지도층 인사들에게 이것은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는 일이다.

비전향 장기수 문제로 의문사위 파동이 있었을 때 신기남 의원은 미국에서 교포들에게 본인은 한국전쟁 당시에 공비토벌을 지휘한 경찰 간부의 아들이며 장교출신이라는 점을 밝히며 사상적 결백을 입증하려 했다. 이 장면은 냉전이 만들어 놓은 한국의 사회적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갈등 각오,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국에는 반공과 안보에 기여했으면 모든 것이 합리화되고 비판자의 입을 막을 수 있다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거꾸로 말하면 일단 빨갱이라고 낙인이 찍히면 아무리 좋고 훌륭한 일을 했어도 소용없다. 해방 직전부터 건국을 준비한 몽양 여운형 선생을 대한민국 정부는 아직도 독립유공자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일제하의 노동운동, 농민운동, 해외 무장투쟁에 대한 기록도 남한의 국사에서는 대부분 사라지고 독립은 미군이 갖다 준 선물이 되었다.

외국과의 역사 전쟁은 애국심과 민족의식이라는 무기를 동원할 수 있으므로 정부, 여당에게는 오히려 치르기 편한 일이다. 소위 주류층들도 상대가 미국만 아니면 상관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국내 역사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일본이나 중국에 대해 말발이 서지 않는다.

우리가 친일파를 규명할 의지가 있으면 갈등을 각오하고 마음을 단단하게 먹어야 한다. 집 단장을 새로 하려면 쓰레기부터 치워야 하는 법이다. 해방 당시에 친일파라는 역사의 쓰레기를 치우지 못해 발생한 비용을 냉정하게 계산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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