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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 신원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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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동사연구소 작성일15-02-23 11:32 조회2,2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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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2011년 8월 12일 [경향신문])

 

신 원 철 (부산대 사회학과)

 

 

한진중공업 사태를 둘러싼 핵심 쟁점은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조치가 과연 정당한 것인가, 특히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기업의 경영 상황에 관해서는 경영진이 가장 잘 알고 있겠지만, 지금까지 한진중공업 경영진은 그 필요성을 노동자들에게 납득시키는 데 실패했다.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조치는 이미 커다란 사회적 쟁점이 됐다. 이를 계기로 정리해고의 요건과 기준에 관해 재검토하고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다. 필자는 이번 정리해고 조치가 정당하지 않다고 본다. 그 이유를 밝혀보고자 한다.

먼저, 2008년 하반기 이후 닥친 조선 불황을 이유로 정리해고 조치를 정당화하기는 힘들다. 2009년 국내 조선 수주실적은 89.9% 줄었다. 하지만, 건조실적은 1.6% 감소하는 데 그쳤다. 현대, 삼성, 대우 등 대형 조선소나 STX 등에서는 2009년 이후 정규 생산직 사원의 감축이 검토되지 않았다. 즉 금융위기로 인한 조선시장 불황은 정규직 사원에 대한 감원을 실시할 만한 충격을 주지 않았다. 조선 대기업은 2~3년의 작업물량을 미리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작업스케줄을 조정하면서 시장의 회복을 기다릴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비록 이 과정에서 중소 조선소와 많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실직의 고통을 겪어야 했지만.

 


이후 2010년 조선시장이 회복추세로 돌아서고 2011년 상반기에는 컨테이너선의 대량 발주가 이루어졌지만, 한진중공업은 2009년뿐 아니라 2010년과 2011년 상반기에도 수주를 전혀 하지 못했다. 2010년에 한국조선협회 회원사 가운데 수주를 전혀 하지 못한 기업은 한진중공업과 현재 정상적인 경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SLS조선뿐이었다. 또 2011년 상반기에는 성동조선해양과 SPP조선 등 중형 조선소도 컨테이너선 수주실적을 올리는 상황이었는데, 이 분야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는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는 전혀 수주를 하지 못했다.

반면 한진중공업 자회사인 필리핀 수빅조선소는 2010년에 29척의 선박을 수주했다. 이 가운데는 중형 컨테이너선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은 이 시기에 필리핀 수빅조선소로 수주를 집중하는 경영방침이 취해졌음을 시사한다. 즉 신생 조선소로서 가동 초기에 불황을 맞이해 2009년에 수주실적이 없었던 수빅조선소의 경영을 조속히 정상 궤도에 올려놓는 한편, 영도조선소의 구조조정을 가속화한다는 방침이 취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볼 때,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는 임금이 싸고 넓은 부지를 확보할 수 있는 필리핀에 조선소를 건설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 영도조선소의 생산을 축소·조정하려는 경영자의 전략과 관련돼 있다. 이는 훌륭한 경영전략으로 판명될 수도 있다. 필자는 조선 대기업의 해외진출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의 해고조치를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량 정리해고 자체가 노동자와 그 가족의 삶, 그리고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괴적 효과를 고려한다면, 그러한 전략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자리의 보호라는 기업의 중요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노력이 어느 정도나 있었는가 하는 점이 중요한 검토대상이 돼야 한다.

 

한진중공업 노조는 수빅조선소 건설 당시부터 고용 안정을 보장받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 경영진의 합의를 얻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수빅조선소가 본격 가동하는 2008년 영도조선소의 건조실적은 45만여t(CGT)으로 2006년 62만여t, 2007년 63만여t과 비교할 때 급격하게 감소했다. 결국 한진중공업 경영진은 110만t(36척)의 수주물량이 남아 있던 2009년 말 800명, 2010년 말부터 다시 400명의 정리해고를 추진하면서 여기에 저항하는 노동자들과 갈등을 빚어 왔다. 더구나 1차 정리해고를 추진하는 시점에 주주들에게 1주당 250원씩 약 119억원의 현금배당을 했고, 2차 정리해고를 추진하면서 다시 주식배당을 실시한 점은 경영진이 노동자를 기업의 주요 구성원이자 이해당사자로 대우하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또 ‘고용 안정’이라는 가치가 노사가 함께 추구해야 할 핵심 가치라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라는 요건은 경영자가 단순히 효율적 기업경영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 해고할 수 있게 한 것이 아니고, 고용 안정이라는 가치를 포기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객관적 필요의 존재를 경영자가 입증하도록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이번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의 경우 경영진이 노동자의 일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보기도,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해고조치를 내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고 보기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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