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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칼럼> 기륭전자 해고자들의 천일야화 / 이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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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동사연구소 작성일13-05-28 15:35 조회1,8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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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로]기륭전자 해고자들의 천일야화 (2008년 5월 23일 [내일신문])


이종구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5월 11일은 하이서울 페스티벌 봄 축제 마지막 날이었다. 이날 새벽에 서울 시청광장에 있는 철탑에 4명의 여성이 올라가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2005년 7월에 노조를 만들고나서 해고된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전국 뉴스에서 다루어지기 시작하자 정부와 서울시가 움직이기 시작해 단체교섭이 재개되고 노동자들은 농성을 일단 풀었다.

5월 20일에는 투쟁 1000일을 기념하는 집회가 열렸으니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무려 3년을 버틴 것이다. 그러나 주인이 바뀐 회사는 생산라인을 모두 중국으로 옮겨 놓았으며 노동자들이 복직해도 일감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 사건은 한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300명 중에 정규직은 불과 15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노동부도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한 비정규직이었다. 사용자는 노동부의 판정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약기간이 끝나는 노동자들은 모두 내보냈다. 검찰이 불법파견으로 기소하자 벌금도 깔끔하게 냈다.

그러나 노동자에 대한 회사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사건 발생 당시에 노동자들이 받는 보수는 법정 최저임금보다 10원 많은 64만1850원이었다. 여기에서도 최저임금제도가 있어야 하는 이유를 생생하게 알 수 있다. 회사가 돈이 없어서 이렇게 행동하는 것도 아니었다. 사건이 시작된 2005년의 순이익은 210억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300명 중 정규직은 불과 15명

외부에서 보기에 노동운동 덕분에 회사는 아직도 임금 수준이 한국의 1/10인 중국으로 생산 공정을 이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땅값이 오르고 있는 서울 시내의 공장 부지도 MB정부의 구상대로 수도권 규제가 완화되면 즉시 아파트 용지로 팔 수 있으니 급할 것이 없다. 노동쟁의가 벌어지고 있는 골치아픈 회사의 주인이 몇번씩 바뀌고 있는 것을 보면 투자자들은 부동산에 대한 계산을 냉정하게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물론 기륭전자와 직접 연관된 일은 아니지만 얼마 전에 서울시 의회는 공장부지를 주택용지로 쉽게 전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례를 제정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서울시의 반발로 이 작업은 중지되었다. 서울시의 반대 이유는 집값이 폭등하고 중소공장이 없어지면 산업 기반이 붕괴된다는 것이었다.

진보정당이나 시민운동 단체는 이 논쟁에 끼어들 틈도 없었다. 시장원리에 따라 공장을 아파트로 바꾸면 당장 건설경기가 좋아지고 일자리도 잠시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수도권에서 새로운 도시형 고부가가치 산업이 육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장이 없어지면 서민층이 힘들게 되고 국가 경쟁력도 추락하게 된다. 아파트 주민도 직장은 있어야 한다. 일자리가 없는 도시는 빈곤과 범죄의 소굴로 전락한다.

일본의 도꾜나 오사카에서도 도시의 공업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갖가지 지원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중소기업의 숙련공들이 좋은 부품을 깎아내야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 최고 품질을 가진 공산품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임금이 한국보다 몇배나 높은 일본제 기계부품이 공급되지 않으면 당장 한국의 핵심산업도 큰 타격을 받게 되어 있다.

기륭전자 사태의 핵심 쟁점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를 보호하는 제도적 안전장치에 관한 사항이다. 그러나 핵심은 한국의 정부와 일부 기업이 제조업의 미래에 대한 구상과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한 채 단기 수익 달성에만 급급한 천박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있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사

일하는 사람을 구박하는 사회는 발전할 수 없다. 이미 한국의 고용 유연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비정규직 근로자가 늘어나면 가정도 불안해져 큰 계획을 세우지 못하니 아이 낳는 것도 꺼리게 된다. 희망이 없는 학생들은 학습 의욕을 상실한다.

세금 연금 의료보험료가 제대로 걷히지 않으니 사회복지 제도가 동요하게 된다. 결국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가는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사를 하는 결과가 된다. 당연히 챙기는 사람과 손해보는 사람은 다르게 마련이니 사회가 통합되지 않는다.

CEO 출신 대통령을 모셨으니 국민을 잘살게 해줄 수 있다고 주장한 새정부가 능력을 증명하려면 기륭전자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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