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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칼럼> 사회적 신뢰를 파괴하는 국정원의 해킹 의혹 / 이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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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동사연구소 작성일15-07-22 10:48 조회1,7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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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1일 내일신문 기고 신문로 칼럼

이종구(성공회대 사회과학부)

 

제목: 사회적 신뢰를 파괴하는 국정원의 해킹 의혹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이 인터넷 댓글로 여론 조작을 시도했다는 의혹 사건은 아직 법원에 계류 중이다. 상급심으로 올라가면서 판결 내용이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지만 이미 많은 시민들은 국정원의 ...선거 개입을 기정사실로 간주하고 있다. 이 사건의 여파로 사이버 공간에서 형성되는 여론의 공신력은 추락했다. 최근에는 국정원이 대선 직전에 개인의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실시간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해킹프로그램을 대량 구입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더구나 담당 직원의 자살로 이 사건은 대형 정치 쟁점이 되고 있다. 전자감시 사회의 도래를 실감한 시민의 불안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국정원의 댓글 여론 조작이나 해킹은 한국의 정보통신 기반이 정비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한국의 인터넷 환경을 경험한 선진국 시민들은 감탄을 아끼지 않고 있다. 물론 통신망을 비롯한 기반 시설이 정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시민이 정보화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 기업이 생산한 휴대전화 광고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이 단기간에 정보통신 강국으로 떠오른 배경을 살펴보면 하드웨어로 구성된 물적 환경만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의 정비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통신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는 믿음을 공유하고 있는 시민들이 거리낌 없이 SNS에 콘텐츠를 올리고 이메일이나 휴대폰으로 소통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정보통신 산업이 급성장할 수 있었다. 민주화와 정보화가 상승작용을 하며 새로운 일자리도 만들어지고 시민의 발언권도 높아졌다. 네티즌 개인이 전 세계를 향해 정보를 발신할 수 있는 사회에서는 옛날과 같이 대형 언론사 몇 곳을 장악해 여론을 조작하는 행위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사이버 공간의 자유는 현실 공간의 민주화와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세계적인 브랜드가 된 한류 문화상품도 퇴폐풍조 단속이 없어지고 창작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화 시대의 산물이다.

사이버 공간에서도 은밀하게 정보수사기관이 시민을 감시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되면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해킹 대상이 된 기종의 휴대전화가 팔리지 않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이 담긴 통화나 데이터의 유통이 줄어드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감시를 의식한 시민들이 주눅이 들어 서로 연락을 삼가게 되고 사회적 네트워크의 형성이 지장을 받는 것이 진짜 중요한 사건이다. 사회적 네트워크가 위축되면 지식과 정보의 교류도 줄어든다. 사회 전체적으로 창조적 역량이 축적되지 않으므로 연구개발능력이 향상되지 않고 문화콘텐츠 산업만이 아니라 첨단산업의 경쟁력이 낙후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즉, 창조경제의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 미국의 실리콘 밸리가 정보통신산업의 중심으로 떠오른 중요한 배경의 하나가 자유분방한 행동과 문화를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이다.

정치적 권위주의와 첨단산업이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은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동반 몰락한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권에서 이미 실증되었다. 스탈린 시대의 소련을 본받아 노동력과 자원을 대량 동원하여 경제 발전을 추진한 동유럽은 1960년대 후반에 들어오자 지식과 정보를 기반으로 한 서방측의 기술혁신을 따라갈 수 없었다. 기술 격차를 만회하려면 사회적 개방과 민주화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등장하였으나 이는 정치적 이유로 허용될 수 없었다. 1968년에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나선 “프라하의 봄”은 양심적 지식인의 운동이었을 뿐만 아니라 기술혁신을 가로막는 하향식 계획경제 체제의 한계를 실감한 노동자 집단의 입장을 반영하는 사건이었다. 소련군의 무력 개입으로 “프라하의 봄”은 좌절되었지만 개혁을 거부한 현실 사회주의는 불과 20년 후에 자체 붕괴하고 말았다.

국정원을 의혹의 대상으로 만든 배후 세력의 퇴행적 정치 행태는 헤아릴 수 없는 희생을 치르고 이룩한 민주화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행위이다. 이 사건으로 한국 사회가 치러야 할 최대의 사회적 비용은 신뢰의 상실이다. 시민들이 상호 불신하는 답답한 사회에서는 신뢰가 축적되지 않으며 질서와 통합을 유지하는 관리 비용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도 국정원을 악용한 어둠의 정치세력에 대한 철저한 규명과 책임 추궁이 필요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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